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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신행]
아비라기도는 왜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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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스님  /  2024 년 1 월 [통권 제129호]  /     /  작성일24-01-05 13:28  /   조회52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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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 길라잡이 1 

 

일행스님

 

아비라기도가 시작된 지 이틀째 되는 날, 아비라기도를 처음 도전하는 어느 보살님이 툴툴거렸다.

“스님, 아비라기도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힘들기만 하지 법신진언法身眞言을 하는 내내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하겠고, 그래서 재미없어요.”

순간 어떻게 말해 주어야 할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비라기도를 강력하게 권고한 건 나였기에, 조금이라도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줄 일말의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비라기도는 힘든 기도이다. 총 24품을 하게 되는데 그 한 품이 108배, 법신진언 30분, 능엄주로 구성되어 있고 소요시간은 대략 1시간이다. 이 중 힘듦의 압권(?)은 장궤합장長跪合掌으로 하는 법신진언 시간이다. 장궤합장은 무릎을 꿇고 서서 하는 자세이기에 고통스럽고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심자일수록 하다가 힘들게 되면 ‘좌선하듯 바르게 앉아서 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이런 힘든 자세로 하라고 하는 걸까?’라는 원망어린 생각이 솟게 된다.

 

수행의 치열함을 더해 주는 장궤합장

 

옆에 있는 다른 보살에게 물었다.

“보살님은 왜 아비라기도를 합니까?”

그 보살의 대답은 이러했다.

 

“치열함에 빠져 보고 싶어서요. 이번에는 저와 타협하지 않고 해야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답니다.”

나는 속으로 ‘평소에 기도를 꾸준히 해 오더니 제법이네.’라고 생각했다. 이 보살은 아비라기도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 말대로 아비라기도를 하면 치열熾熱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 1. 장궤합장의 올바른 자세.

 

스스로를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기에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을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히 육신이 보내는 고통과 시간이 더디 가는 지루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치열함에 빠져 보겠다’는 말은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듯 코너에 몰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다잡으며 법신진언 소리에 집중해 가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늘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역시 되풀이되는 기도수행(일과日課)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기 자신을 조일 수 있는 긴장도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공부의 불길이 꺼지지는 않지만 활활 타오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를 바짝 긴장하며 조일 수 있는 기도수행을 종종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아비라기도가 그 치열함을 바라는 마음에 맞춰진 기도수행법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언급한 대로 아비라기도에서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압권은 장궤합장의 법신진언 시간이다. 그러면 그 장궤합장이라는 조임을 통해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현재의 내 정신 상태가 어떠한지 바로 그 현주소를 알 수 있다.

 

1) 이 정도의 고통만으로도 이렇게 쩔쩔매는구나.

2) 이런 고통 상황에서도 나의 정신은 사방팔방으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다니고 있구나.

 

나의 현 정신적 실태와 수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상태이니 공부를 놓을 수 없고, 아니 더 매진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그런 다짐과 자극을 받기에 딱 좋은 수행법이다. 장궤합장을 하고 차분히 내는 법신진언의 소리에 집중하여 딴 곳으로 가려는 내 의식을 묶어 두려 애쓴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일정하게 토해 내며 법신法身을 일깨우는 소리에 온 마음을 기울인다. 듣고 응시凝視한다.

 

내가 어떤 자세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계속해서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는 주체인 ‘나’를 강하게 인지하고 움켜쥐는 것이 된다. 주체 의식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다. 주체 의식이 강해지면 내 삶이라는 장場에서 내가 주인으로서 중심을 잡고 당당하게 살아가게 된다. 대상에 정신을 팔지 않고.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법신진언

 

그런데 왜 하필 법신진언일까? 법신진언을 하면 업장이 소멸되고 소원이 성취된다기에 그런 것일까? 어느 진언치고 업장이 소멸되고 소원이 성취되지 않는다고 하는 진언은 하나도 없다. 업장이 소멸되고 소원이 성취된다는 것, 기도하는 사람은 일단 그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되든 말든 그건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멸될 일이 있고 성취될 일이 있으면 관여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핵심은 소멸이 될 수 있게, 성취가 될 수 있게 만들어 가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데 있다.

 

내 안에 깃들어 있으면서도 제 역할을 100% 다하지 못하는 보물이 있다고 한다. 그 보물을 일컬어 법신法身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참나’라고 하기도 하고, ‘주인공’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법신이 본래의 나이다.

 

그런데 왜 ‘참나’인 법신이 100%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어 온 좋지 않은 습기習氣, 즉 욕심을 비롯한 갖가지 번뇌망상이 법신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좋지 않은 습기들을 제거해 나갈 수 있다면 법신은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고,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진 2. 해인사 백련암의 설경.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장궤합장이라는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 내 안의 법신을 깨우기 위해 법신진언을 소리 높여 부르는 것, 그것도 치열하게, 이것이 ‘참회로써의 108배, 참나를 깨우는 법신진언, 간절한 서원의 능엄주’로 구성된 아비라기도의 특징이자 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몇 파트 해 보고서는 도대체 왜 아비라기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들을 보면 너무 쉽게 판단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성철 큰스님께서 하라고 하셨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불자들 애먹이려고 일부러 힘든 방법을 제시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이유가 우리 수준에서 쉽게 헤아려지지 않더라도 힘듦과 고통을 참고 견디며 끝까지 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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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스님
해인사 출가. 안산 정림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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