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종경록』과 한국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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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8 년 5 월 [통권 제6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446회 / 댓글0건본문
2015년 8월에 출판된 『명추회요』의 내용을 한 가지씩 소개하는 연재가 벌써 서른두 번째에 이르렀다. 방대한 내용이지만 한두 가지씩 쓰다 보니 벌써 마무리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명추회요』와 『종경록』의 안이 아닌 바깥에 서서 이 책이 지닌 가치를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필자는 5월 초에 중국 무한대학(武漢大學)에서 열리는 선종 학술대회에 초청을 받아 발표를 할 계획인데, 발표의 주제는 영명연수의 선사상이 한국불교에 끼친 영향에 대한 것이다. 발표를 마치면 무한에서 한 200킬로미터 떨어진 황매산(黃梅山) 답사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황매산은 오조 홍인대사의 주석처로, 육조 혜능이 처음 구도의 마음을 먹고 찾아갔던 곳이기도 하다.
영명연수 선사는 긴 한국불교의 흐름에서 본다면 그동안 그렇게 크게 주목받았던 인물은 아니다. 오늘날로부터 시작해서 거꾸로 돌아본다면, 연수 선사에 대한 현대 한국불교의 관심은 성철 스님에게서 시작된다. 1981년에 나온 『선문정로(禪門正路)』의 첫 구절에서부터 성철 스님은 『종경록』 제1권 「표종장」의 문구를 제시한 뒤, 『종경록』이 선종사에서 지닌 가치를 극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종경록』을 촬요한 『명추회요』가 한글로 번역된 것도 다 스님께서 연수 선사에게 큰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명추회요』를 소재로 연재를 하게 되면서 제일 궁금했던 점 중의 하나 역시 성철 스님께서 『선문정로』를 쓰실 때, 『종경록』을 다 보고 쓰신 것인지 아니면 『명추회요』를 참조하셨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실제 백련암에 소장된 책들을 확인해본 결과 성철 스님께서 직접 『종경록』을 읽어보신 다음 그 내용을 추려내셨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성철 스님께서 파악하신 『종경록』의 위상과 내용 등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종경록>과 견성, 무심, 그리고 돈오돈수
성철 스님께서 쓰신 『선문정로』 제1장인 ‘견성즉불(見性卽佛)’은 바로 연수 선사의 『종경록』의 문구, 즉 “견성(見性)을 하면 즉시에 구경무심경(究竟無心境)이 현전하여 약과 병이 전부 소멸되고 교와 관을 다 휴식하느니라.”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성철 스님이 보시기에 선종의 견성(見性)은 곧장 성불(成佛)하는 것이므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을 선종 조사들의 글에서 찾으셨던 것인데, 그 내용이 『종경록』 「표종장」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간 필자는 위 문구에서 견성과 무심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에만 주목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새삼 “약과 병이 전부 소멸되고 교와 관을 다 휴식하느니라.”는 구절 역시 새롭게 보인다. 성철 스님께서는 이 문구에서 돈오돈수의 의미를 보셨던 것은 아닐까. 즉 『종경록』의 짧은 구절 속에 스님께서 중시하셨던 견성, 무심, 그리고 돈오돈수가 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필자에게 문득 떠오른 것이다. 돈오돈수에서 돈오란 그 깨달음이 바로 부처님과 같은 것이어서 더 이상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므로, 이론적인 교(敎)와 실천적인 관(觀)이 모두 다 그 역할을 그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비록 『종경록』 「표종장」에 돈오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내용적으로는 분명 돈오돈수의 맥락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종경록』이라는 방대한 책 속에는 돈오돈수라는 말씀이 분명히 나오지만, 그와 동시에 돈오점수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문제로 대두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저 바다 건너 일본의 젊은 불교학자가 그의 박사학위논문에서 상세히 해명하였다.
그래서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는 2016년에 한국선학회와 같이 연수 선사의 선사상을 해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그 자리에 이 일본 학자를 초청하여 연수 선사의 돈점론에 대한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야나기 미키야스(柳幹康)라는 이름의 일본 학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성철 스님의 견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 무척이나 고무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 전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도 그는 『선문정로』가 중국어로 번역되면 꼭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필자 역시 야나기 선생님의 연구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동아시아 선종사에서 돈점론을 둘러싼 채 전개되었던 치열한 논쟁이 한국불교에서도 다시 한번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중국에서는 마조 스님의 후예들과 종밀 스님에 의해 벌어졌던 이 논쟁이 한국에서는 고려의 보조 스님과 현대의 성철 스님에 의해 대략 800여 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던 것이다.
돈점논쟁의 방향성
이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얻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눈을 돌려 중국에서 벌어졌던 돈점논쟁을 먼저 살펴보자. 중국불교에서 돈점논쟁은 규봉종밀(780-841) 스님에 의해 가장 선명히 제기되었다. 그는 하택(荷澤)의 후예를 자처한 인물로서, 당시 하택과 대비되는 선풍을 지니고 있던 마조(馬祖, 709-788)의 후예들에 대해 강력한 비판정신을 발휘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마조 스님은 육조혜능-남악회양으로 이어지는 남종선의 선풍을 이어받아 ‘작용이 그대로 본성의 체현’이라는 작용시성(作用是性)의 가르침을 세운 분이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 스님은 도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생활 속에서 환히 드러나 있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이러한 마조 스님의 관점을 ‘돈오돈수’라고 얘기해보자. 그런데, 스님의 후예 가운데서는 수행이 부족하고 통찰이 미흡한데도, 마조 스님의 말씀을 흉내 내는 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오염되고 결핍된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데 마조 스님의 ‘평상심시도’와 같은 언구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지켜보던 종밀 스님은 마조 스님의 후예들이 부족한 이유를 ‘불철저한 깨달음’과 ‘수행의 부족’에서 찾았고, 비록 돈오하더라도 점수의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밀의 ‘돈오점수론’이다.
연수(904-975) 선사는 종밀 이후 대략 100여 년 뒤에 활동했던 인물로서, 마조뿐 아니라 종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연수 선사는 종밀을 배척하기보다는 자신의 돈점론 가운데서 일정 정도의 역할을 주어 포괄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즉 연수 선사는 마조 스님의 ‘평상심시도’를 철저한 깨달음의 경지인 돈오돈수의 모습으로 복원시켰고, 이것이야말로 마조의 본의라고 보았다. 다만 수행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돈오점수의 구도 역시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으므로, 이를 폐기하지 않고 자신의 체계 내에 두었다. 돈점론을 둘러싼 이런 과정이 있었으므로, 『종경록』 안에는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복잡하게 뒤섞여 등장했던 것이다. 이처럼 당(唐)에서 벌어졌던 돈점논쟁은, 돈오를 철저한 깨달음(證悟)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이해차원의 깨달음(解悟)으로 볼 건인지를 둘러싼 채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철 스님은 그야말로 복잡다단한 현대한국사를 관통하면서 선의 전통을 지켜온 분이다. 스님께서는 당시에 만연되어 있던 불철저한 깨달음과 그에 따른 폐해들을 심각하게 생각하셨고, 어려운 시대일수록 원칙을 굳게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당시 불교계의 문제점을 불철저한 깨달음에 기반한 수증론인 돈오점수에서 찾으셨고, 그것의 기원이 되는 중국의 하택과 종밀, 고려의 보조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셨던 것이다. 다만 스님의 비판이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오늘날 한국의 선문에서 돈오돈수의 향상일로(向上一路)로 매진하는 눈 푸른 수행자들이 끊이지 않고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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